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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 이모저모


미디어 기술의 혁신으로, 방송국에 입사하지 않아도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될 길은 이전보다 많아졌다. 수준있는 콘텐츠를 만들려면 좋은 카메라, 좋은 편집기, 좋은 컴퓨터가 있는 방송국에 입사해야만했다. 그러나 카메라의 대중화, 편집 소프트웨어의 발전이 이루어졌고, 이들에 대한 진입장벽이 매우 낮아졌기 때문에, 방송국에 입사를 해야만 좋은 콘텐츠 제작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에서 성공한 콘텐츠 중 상당수는 이미 이른바 "방송국놈들"의 콘텐츠가 아니다.

그럼에도 방송국은 콘텐츠와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직장이다. 이전에 "방송국이 계속 잘될 수 밖에 없는 이유"에서 이야기 했듯이 1) 방송국은 크리에이터들에게는 오직 콘텐츠에만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직장이며, 2)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과 달리, 현금 흐름이 매우 좋은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인 콘텐츠 창작자가 되거나, 아니면 제작사에 입사하더라도 투자자를 모집하거나, 스스로에게 알맞는 제작 환경을 스스로 어느 정도는 세팅해야하지만, 방송국에서는 모든 인프라가 다 갖추어져있고 모든 조직원 및 지원 조직의 초점이 "좋은 콘텐츠" 생산에 집중되어있다. 대표적으로 SBS의 사훈은 "건강한 콘텐츠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이고, MBC의 비전은 "콘텐츠 중심의 글로벌 미디어 그룹"이다. 난 방송국을 떠났지만, 이렇게 콘텐츠 이야기로 가득찬 회사는 방송국 이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다만 방송국 지원하는 사람들이 쉽게 놓칠 수 있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바로 여러분은 PD, 기자, 엔지니어, 아나운서, 경영직이기도 하지만 방송국의 '직원'이 되고자 지원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콘텐츠 창작자가 되기도 할테지만 방송국의 직원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가는 여러 명 중 한 명이 되는 것이다.



나는 특히 이번 SBS의 선거방송 2022 국민의 선택이 끝나고 나온 "제대로 만든 사람들"이라는 클립에서 이를 느낄 수 있었는데, 딱 하루에 진행되는 선거방송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수많은 PD와 수많은 기자가 투입될 뿐만 아니라, CG작업을 도와주는 여러 업체들, 데이터를 확인해주는 여러 사람들, 선거 결과를 읽어주는 여러 아나운서들 등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방송이 이루어졌다.

방송으로 볼 때는 방송을 진행하는 앵커나 진행자, 또는 간판 프로그램의 메인 PD가 주인공으로 여겨질 수 있고, 지원하는 사람들도 이들 중 한 명을 꿈꾸고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 들어가면, 여러분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여러 팀원 중 한 명이다.

SBS 선거방송 2022 국민의 선택 클립 中


그런데 주변에 방송국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방송의 "예술"적인 측면에 치우쳐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창의성/Creativity, 어떤 작품을 만들어봤고, 본인은 크리에이터로서 어떤 예술성을 가지고 있는지만 강조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적어도 2020년대의 방송국 입사 시험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 만일 방송국 입사를 위해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방송국의 입장에서는 "어떤" 작품을 만들었는지보다,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었는지가 중요할 수 있다. 크리에이티브는 여러 사람의 힘을 빌려 채울 수 있다. 그러나 PD, 기자, 엔지니어, 경영직 직원이 조직원으로서 중심을 찾지 못하고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하지 못한다면, 그건 여러 사람의 힘을 빌려 채울 수 없다.

1인 미디어가 발달할 수록 방송국 입사자 스스로에게도 중요한 질문, 그리고 회사 입장에서도 중요한 질문이 "왜 1인 미디어가 아니라 방송국인가"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점점, 1인 미디어 기술이 발전할 수록, 방송국들이 이 질문을 지원자에게 할 것이고, 명확한 답을 요구할 것이라 확신한다.

언젠가 이 글을 볼 방송국 선배들에게, 그리고 지나가던 분들에게는 퇴사를 한 내가, 그리고 제작직무도 아닌 전략기획직무에 있었던 내가 이러한 글을 쓰는 게 오만해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난 퇴사를 했지만 아직도 내 전 직장을 사랑하며, 아직도 너무 좋은 회사라고 생각하며, 그 조직의 조직원이 되는 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세상에 더 많은 걸, 다른 방식으로 주고 싶었기 때문에 퇴사했기 때문에.. 콘텐츠 업계에 아직 관심과 애정이 큰 사람으로서 이러한 글을 남긴다.

https://leeconomics.tistory.com/85

방송국 입사 이모저모 2 : 스스로를 언시생이라고 규정지으면 안된다

대학교에서 방송부를 했었기 때문에 방송국 입사하는 친구들도 많고, 나 스스로도 경영직이긴 하지만 지상파 방송국 공채를 뚫고 방송국에 입사했었다.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관찰한 사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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